[A] 《기억의 잔광(殘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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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잔광(殘光)》[ 박사, 로고스의 기록, NON SHIP] 

 

희뿌연 조명 아래, 로고스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생체 모니터의 청색 불빛이 낮게 깜빡이고 있었다. 

생존, 안정, 회복. 숫자들은 정상이었지만, 가슴 어딘가가 허전했다. 공허는 생존 그 자체보다 선명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머리가 무거웠고, 뒷목이 식은 땀에 젖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박사.”
이름을 부르자마자, 병실에 있던 동료 오퍼레이터 셋이 동시에 시선을 주었다.
그 눈빛에는 안도보다 주저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무너질 진실을 입술 끝에서 다듬고 있는 사람들처럼.

“박사는……”
로고스의 물음은 조용했지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아미야가 나섰다.
“ 박사님은 당신을 치료하고, 자리를 비웠어요. 지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럴 리 없지.” 로고스는 낮게 속삭였다.

 “그는...”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무거웠고,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지만, 뚜렷한 감각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가 분명 여기 있었다. Seir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능력을 썼다. 그건 확실했다. 붉게 번지던 오리패시의 힘. 

그 안에서 자신을 감싸 안던 감정 없는 손.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그의 말투, 손의 온도. 마치 사라질 운명을 예고하듯, 로고스의 뇌리에 남아 있던 Seir의 모습이 노이즈처럼 흔들렸다.

 

봉인. 

 

"그는 선택을했군"  

 

아미야는 그의 말에 멈칫했다. 로고스의 눈빛은 예리했다. 날카로운 게 아니라 단단했다.
그는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아직은.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조차 분석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생긴 이 간극, 이 잔열이 무엇인지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내게 기억을 두고 갔다. 남은 걸 추적하겠다.”
로고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가 남긴 흔적, 접촉 기록, 혈청 잔류, 마지막 사용한 단말기의 열기. 이 방의 냄새. 아직 쫓을 수 있다.”

 

그 말에 캘시는 처음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해했다. 로고스는 지금, 분석이 아니라 애도의 방식으로 기억을 쫓고 있다.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구조화하는 방식만큼은 누구보다 정밀했다.

 

그 순간, 그의 붉은 눈동자에 짧게 빛이 일렁였다.
그가 나를 잊어도 상관없다. 로도스에는 그가 필요하다.

 

-

로고스는 멈춰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Seir—박사의 생체 데이터 모니터와 연결된 신경공명 해독기, 그리고 끝없이 갱신되는 언어 파형이 있었다.

“언어라기보다, 잔향에 가깝다.”

그는 낮게 중얼이며 입력된 로그들을 눈으로 훑었다.
의식 파장은 일정했으나, 주기적으로 이상 활동이 감지됐다.
심연에서 올라오는 무언가.

파열된 신경 전류의 리듬, 깨진 문장, 이름 없는 대상들.
'반응 없음', '대상 없음', '누락된 항목'.
그러나 로고스는 알았다.
그건 ‘없음’이 아니라, ‘잊혀짐’이었다.

그는 노트에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적어 나갔다.

“청색… 온기… 감정 반응 없음… 저항 없음… 손… 이름… 침묵…”

서로 아무런 의미 없는 단어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로고스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단어의 배열을
단지 '신호'가 아니라 ‘문장’으로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였다.

그는 펜을 멈추지 않고 묵직하게 중얼였다.

“이건 지문이다.
그가 봉인의 틈에서 흘려보낸, 마지막 감정의 형상.”

  •  

잠시 후, 로고스는 단어들을 정렬하고 배열해 보기 시작했다.
언뜻 무작위로 보이는 데이터였지만, 그에게는
‘분석’이 아니라 ‘애도’에 가까운 해석이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손은 나를 향했다.
말은 없었으나, 온도는 남았다.
청색은 감정이 없는 자의 색이지만,
그 순간, 그는 나를 지켜보았다.”

로고스는 펜을 놓고 낮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이 문장 끝에서 무언가를 본 듯, 미세하게 웃었다. 그것은 비웃음도, 자부심도 아닌,

오직 '기억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누구를 기억하려 했는가.”

그는 조용히 다시 몸을 일으켜, 의식기록기의 출력지에 손을 얹었다.

“……그는 나를 지우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내게 남겨진 흔적을 지키려 한 것이다.”

잠시, 기계음이 울렸다.
그 속에서 흐릿한 박사의 목소리와도 같은 잡음이 들렸다.

“…기억, 파편… 추적자… 미안… 보내지 마…”

로고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 모든 문장을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귀결시켰다.
그가 오래전부터 붙들고 있던 그 하나.

“Seir.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암호 해독가가 아니었다.
그는 남겨진 자였고,
남은 기억을 수복하려는 자였다.

 

 

“기억은 말보다 오래간다.”

로고스는 그렇게 중얼이고, 다시 노트를 꺼내 문장을 잇기 시작했다.
사라진 언어의 끝에서 그는 다시, Seir의 이름을 썼다.

 

이름 하나, 문장 하나.
그는 그것을 쌓아, 그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그가 깨어났을 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나를 잊는다면, 그건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하고, 기억하겠다.
이름이 지워져도, 내가 본 그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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