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는 기억보다 느리다》- 박사,루멘 (NON SHIP)
박사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의식 그래프는 낮은 고동을 반복했고, 파형은 안정적이나…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루멘은 조용히 침상 곁에 앉아, 손에 쥔 얇은 조명등을 조정했다.
밝기는 언제나처럼 최소로 낮췄다. 박사가 깨어나면 처음 맞이할 빛은 너무 눈부셔선 안 된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박사의 손끝에 희미한 광막을 덮었다.
회로망이 굳은 피부를 타고 흐르고, 감각이 잃어버린 언어를 대신해 손끝에 말을 새겼다.
“당신은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루멘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기억은, 말이 없어도 남습니다. 감정은, 아직 여기 있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 침묵을 공허가 아니라 ‘존재’로 채우는 것.
그것이 루멘이었다.
며칠 후, 박사는 조용히 눈을 떴다.
창문 밖은 저녁빛이 젖어 있었고, 실내에는 붉은 조명 대신 부드러운 백광이 켜져 있었다.
숨을 고르는 사이, 손끝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루멘이었다. 그는 여전히 곁에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박사는 천천히 눈을 돌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감정이라는 이름의 잔열이 가슴에 걸렸다.
“…눈부셔.”
그 한 마디에, 루멘의 손끝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네. 다시 돌아오셨군요.”
그는 웃었다.
“돌아오실때까지 머무를 생각이었어요.”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는 그 표정은 더 이상 ‘포기’가 아니었다.
그 속엔 희미하게, 오래된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사람의 기색이 있었다.
빛은 언젠가 닿는다. 설령 기억이 그보다 먼저 사라진다 해도.
_______
《그동안, 여기에 있었나》
의무동 북쪽 복도, 비가 갠 뒤의 햇살이 은은하게 흘러들던 시간이었다.
박사는 문턱을 넘으며 안쪽 병실을 둘러보았다. 침상 옆, 익숙한 조명이 있었다.
그 조명은 언젠가 자신이 잠들어 있던 동안, 깨어 있는 누군가가 켜 두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 빛은 낮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기, 루멘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박사와 시선이 마주쳤다.
박사는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침묵이 짧게 흘렀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여기에 있었나.”
목소리는 건조했으나, 그 말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의미가 스며 있었다.
질문이라기보단, 사실의 확인.
그리고 그 사실이 ‘무사히 남아 있었다’는 안도에 가까운 감정으로. 루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 믿었습니다.”
박사는 말없이 시선을 떨구었다. 마치 무언가를 해석하듯, 오래된 기억의 결을 더듬는 사람처럼.
“……그랬나.”
짧은 대답. 그러나 그 어조엔,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